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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절벽, SKY 나와도 30전 30패'…"학벌보다 기술·경험 필요한 전환기"
남혜성
2019-12-06
본문
하반기 대졸신입 채용 5.8%↓
중소기업은 50% 가까이 급감
'구직 포기' 20代 11만명 늘어
취업준비생들이 지난 9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9 물류산업 청년 채용박람회’에서 기업들의 현장 면접을 신청하기 위해 줄을 선 채 기다리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졸업반인 K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K씨는 살면서 ‘실패’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었다. 취업도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그는 올 하반기 취업시장에서 10여 개 기업에 지원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한 차례도 면접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는 “불합격 통보를 받을 때마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해 온 내 인생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갈수록 악화하는 청년 고용한파는 이제 명문대생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취업포털업체 인크루트가 상장사 699곳을 설문조사한 결과 기업들은 올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을 전년 동기(4만7580명)보다 5.8% 줄어든 4만4821명 뽑을 예정이다. 중소기업(349곳)의 전년 대비 채용 인원 감소율은 48.6%에 달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는 불완전 취업자와 잠재 구직자 등을 포함한 청년층(15~29세) 확장실업률(체감실업률)은 지난달 기준 20.5%에 달했다. 구직을 포기하고 쉬고 있는 20대 청년도 33만9000명으로 3년 전(22만8000명)과 비교해 11만 명 이상 늘어났다.
3성급 호텔 1명 뽑는데 대졸 1500명 몰려
"면접만 봐도 감지덕지"
신라스테이는 최근 서울 삼성동에 새롭게 문을 여는 호텔에서 근무할 경영지원팀 직원 한 명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인터넷에 올렸다. 열흘 만에 몰려든 지원자는 무려 1500여 명. 지원 자격을 ‘초대졸 이상’이라고 공지했지만 4년제는 물론 외국대학 졸업자들도 이력서를 보내왔다. 신라스테이 관계자는 “지원자가 너무 많아 선발 인원을 한 명 더 늘렸다”며 “청년 취업난을 실감했다”고 했다.
올 하반기 대기업 대졸공채의 경쟁률은 100 대 1을 넘어서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SK이노베이션(100여 명 선발 예정)에는 1만 명이 넘는 취업준비생이 이력서를 냈다. 60명을 뽑는 한국콜마 공채에 지원한 취업준비생은 6500여 명에 달한다. 안정된 직장으로 꼽히는 공기업 취업문은 더 비좁다. 84명을 선발하는 한국남부발전의 대졸 채용형 인턴 모집에는 지원자 1만1597명이 몰렸다. 한국가스안전공사 경영·회계직군의 공채 경쟁률은 236.5 대 1에 달했다.
“불안해서 도서관 간다”
최악의 취업난에 청년들이 허덕이고 있다. 불완전 취업자와 잠재 구직자 등을 포함한 청년층(15~29세)의 확장실업률(체감실업률)은 관련 통계를 처음으로 집계한 2015년 21.9%로 시작해 매년 늘어나고 있다. 올해도 1월부터 지난달까지 매달 청년층 체감실업률이 20%를 넘었다. 청년 다섯 명 중 한 명은 사실상 놀고 있다는 얘기다.
한양대 국제학부에 다니는 K씨는 “올 하반기에는 공채를 진행하는 기업 자체가 크게 줄어 20여 곳밖에 지원하지 못했다”며 “40~50개 기업에 지원해 겨우 한 곳에 붙었다던 선배들의 후기가 부럽게 느껴질 정도”라고 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S씨는 “선발 인원이 많은 하반기 공채시장이 얼어붙은 걸 보니 내년 상반기는 정말 희망이 없다”고 토로했다. 국민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4점대 초반 학점이지만 올 하반기 공채에서 서류 통과조차 한 번도 하지 못했다”며 “학점과 어학성적은 최소한의 기본 스펙이고, 인턴과 대외활동 등으로 직무 관련 경험 및 경력에서 당락이 결정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과생은 취업 위해 ‘신분세탁’
취업난은 상대적으로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에게 심각하다. 이들은 특히 ‘융합형 인재’를 원하는 기업들의 요구에 절망하고 있다. 한양대 국제학부에 다니는 한 학생은 “과거에는 취업을 위해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복수전공하는 게 유행이었다면 최근에는 컴퓨터공학이나 정보시스템 학과를 복수전공해 이공계열로 ‘신분세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했다.
수시채용 기업이 늘어난 결과 “취업문이 더 좁아졌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경기도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Y씨는 “수시채용 확대는 결국 바로 현장에 투입 가능한 경력직을 많이 뽑겠다는 의도 아니겠느냐”며 “신입·경력사원 모집으로 공고를 내놓고 실제로 세부 직무를 따져보면 신입사원은 이력서를 제출할 자격도 없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토로했다.
수시채용 전형이 대개 ‘깜깜이’로 진행되는 점도 취준생에겐 큰 부담이다.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4학년 L씨는 “현대자동차는 수시채용 전환 후 직무별로 채용 규모가 고작 1~2명에 불과할 때가 많다”며 “도대체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누가 붙는 건지 감도 오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한양대 재학생 K씨는 “공채 시절엔 서류나 면접 등 전형별 일정이 비교적 명확히 나왔는데, 수시채용으로 바뀐 이후로는 채용 일정이 사전에 공지되지 않는다”며 “지원자들은 불확실성 속에 하염없이 발표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국경제 박종관/정의진/이주현/안재광/정소람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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